6·25전쟁 첫 사흘, 38선을 넘은 공격은 어떻게 서울까지 왔을까?

지난 편에서는 38선 주변의 충돌이 전면전과는 다른 작은 전투였다는 점을 살펴봤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그 경계는 한반도 여러 곳에서 동시에 공격이 시작되는 선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번에는 전쟁이 시작된 뒤 사흘 동안 군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고, 어디에서 발걸음이 늦춰졌는지 따라가 봅니다. 지난 편: 옹진과 개성에서 본 전쟁 전의 긴장

1949년 행정 경계를 바탕으로 개략 재구성한 한반도 지도에 개성·의정부·서울의 점령 시점과 춘천·홍천 방면의 지연전, 주요 공격 방향을 표시한 지도
빨간 점선은 38도선, 화살표는 당시 사료에 나타난 주요 공격 방향을 개략 표시합니다. 도 경계는 1949년 행정구역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으며, 정확한 부대별 이동 경로나 실제 전선은 아닙니다.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역사지리정보DB·우리역사넷·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도에는 당시 도 경계를 가늘고 은은한 선으로 표시했습니다. 38도선과 공격 방향은 눈에 띄는 점선과 화살표로 구분했어요. 다만 화살표는 특정 부대의 정확한 행군 경로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역사 자료에 나온 주요 공격 축선을 이해하기 위한 개략 표시입니다.

새벽의 공격, 한 방향이 아니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은 38도선 전역에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역사넷은 당시 북한 지도부가 서울을 빠르게 점령한 뒤 남쪽으로 진출해 전쟁을 짧은 기간 안에 끝내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첫날의 전선은 서울 북쪽 한 곳만이 아니라 서쪽의 개성·문산, 중앙의 포천·동두천, 동쪽의 춘천과 동해안 일대처럼 여러 갈래로 열렸습니다. 우리역사넷, 6·25전쟁의 발발과 초기 전개

그때 한국군은 병력과 장비 면에서 불리했고, 전쟁 직전 경계태세가 낮아진 점도 초기 대응을 어렵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곳에서 아무런 저항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같은 날 시작된 전투라도 지형과 부대 상황에 따라 결과와 속도는 크게 달랐습니다.

개성에서 의정부까지, 서울로 모인 서쪽 길

서쪽에서는 개성이 전쟁 발발 다섯 시간도 지나기 전에 함락됐습니다. 중앙에서는 포천과 동두천 방면으로 공격이 이어졌고, 북한군은 의정부를 거쳐 서울 북쪽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의정부전투 기록을 보면 국군 부대들은 동두천과 포천 일대에서 맞서 싸웠지만, 전차와 포병을 앞세운 공격 속에 방어선이 밀렸고 6월 26일 오후 의정부가 점령됐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의정부전투

이 기록에서 눈여겨볼 점은 날짜만이 아닙니다. 서울에 있던 부대와 후방 부대가 급히 북쪽으로 이동해 전선에 투입됐지만, 부대들이 완전히 모이기 전에 작은 단위로 나뉘어 싸워야 했습니다. 지도 위에서는 개성과 의정부에서 서울로 화살표 두 개가 모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부대가 서로 다른 조건에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춘천에서는 공격이 늦춰졌다

동쪽의 춘천·홍천 방면은 서쪽과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국군 제6사단은 춘천의 소양강과 홍천의 말고개처럼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활용해 북한군의 진격을 늦췄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방어전이 북한군 제2군단의 작전에 차질을 주었고, 국군이 한강 남쪽에 방어선을 만들 시간을 벌어 주었다고 설명합니다. 홍천은 6월 30일에야 점령됐습니다. 서울로 향하는 화살표가 빨랐다고 해서 동쪽의 모든 화살표도 똑같은 속도로 움직인 것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춘천지구 전투

그래서 이 지도에서 춘천은 단순한 이동 지점이 아니라 전선의 속도를 바꾼 곳입니다. 강과 산 같은 지형은 전쟁에서 큰 장벽이 될 수 있었고, 그곳을 지킨 부대의 저항은 다른 지역의 방어 준비에도 시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6월 28일, 서울 함락과 끊긴 다리

6월 28일 서울이 점령됐고, 같은 날 국군 공병대는 북한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한강 인도교를 폭파했습니다. 한국사 총설 DB의 연표는 이 사건을 1950년 6월 28일의 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리가 끊긴 뒤에는 강 북쪽에 남은 군인과 시민의 이동도 어려워졌습니다. 전투 상황을 늦추려는 군사적 조치였지만, 피란을 준비하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비극이 됐습니다. 정확한 피해 숫자는 자료마다 달라 이 글에서는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한국사 총설 DB, 1950년 6월 28일 한강 인도교 폭파 기록

전쟁 첫 사흘을 지도에서 보면 서울까지의 거리는 짧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거리 안에서도 개성은 빠르게 함락됐고, 의정부 방면의 방어는 무너졌으며, 춘천·홍천에서는 지연전이 이어졌습니다. 지도는 군대의 움직임을 보여 주지만, 그 선 밖에서 하루아침에 피란길에 오른 사람들의 삶까지 전부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서울이 함락된 뒤 국군과 미군이 한강 남쪽에서 어떻게 시간을 벌려 했는지, 그리고 오산을 비롯한 남쪽 전선이 어떤 순서로 열렸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참고한 자료